임진왜란 진실은 뭔가요? 혹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피해서 해상으로 일본군 보급 들어갈
혹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피해서 해상으로 일본군 보급 들어갈 거 다들어간 거 아닌가요?혹시 강원도 지역으로 연안항해 해서 보급은 못했나요?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 질문 하는 건데요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지켜 일본군 해상 보급을 막음으로써 승리할수 있었습니다그런데 그때 당시에 해상전투 가 대부분 육지에서 가까운 바다에서 벌어졌던것이던데요일본군이 해상 보급을 하려고 해도 그렇게 육지를 따라서 연안 항해를 해야 했다고 합니다원양항해를 하기에는 그때 당시에 는 원양항해는 어려웠다고 합니다그렇지만 일본 해적 들이 중국에 가서 해적질 까지 했던 것을 보면 원양항해 가 완전 불가능한건아니었던 것 같은데요임진왜란 초기에 일본군 에 고니시 라는 사람이 이끌고 온 배만 700척 정도 된다고 하니20만 일본군이 조선에 다 들어올때 는 그 배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을 텐데 제가 궁금한게일본군이 수륙병진 전략을 하려고 하면 이순신 장군의 눈을 피해서 일단 원양항해 를 시작해서전라도 지역만 벗어난 후 육지로 붙으면서 운행해서 보급하면 해상보급 이 가능했을 것같은데요그때 당시에 육분의 같은 기구도 없고 원양항해 가 어렵지만 일단 전라도 지역만 통과한후 육지로붙으면서 그때 부터 연안항해로 보급 하면 되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하지 못했나요?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요?질문자11분 전 메뉴 더보기선조 실록 에 나오는 이야기 와 난중일기 중 난중일기 가 더 신빙성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또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 이순신 장군은 보급로를 전혀 차단하지 못했다는 데 그런생각은\뭔가요?
당시 일본군이 썼던 세키부네(적선), 아타케부네(대형함선) 같은 배는
원양항해용이 아닌 연안항해용 평저선이었습니다.
파도에 약하고 항해 기술도 조선보다 뒤쳐졌습니다.
일본 해적(왜구)이 명나라까지 갔던 건 맞지만, 그들도
강력한 조류를 타거나 중국 해안 가까이에서 약탈 후 빠지는 식으로 움직였던 거지,
전시 보급로처럼 대규모 함대를 원양항해로 운영한 사례는 없습니다.
게다가 조선 수군이 남해-한산도-통영 라인을 장악했기 때문에
그건 현대의 "모두가 GPS 달고 추적하는 바다"에서나 가능한 상상입니다.
동해를 돌아서 원산까지 올라갔다가, 육로로 내려오나요?
당시 일본의 병참선은 부산-경남-전라도-충청 라인을 타는 것이지
이순신의 해상 차단 + 조선의 의병 + 명나라 지원군으로 인해
보급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아서 조선 내륙에서 고립됐고,
결국 진주성 함락 직후 원정 전략이 붕괴됐습니다.
선조실록 vs 난중일기, 어느 게 더 신빙성?
난중일기는 이순신 본인이 전장에서 직접 쓴 기록입니다.
선조실록은 관찬사서로, 사관들이 후대에 모은 자료라
정확성 면에서 전장 기록으로는 난중일기가 우위입니다.
다만 국가적 큰 틀이나 인사 관계 등은 실록이 더 풍부하죠.
"이순신이 보급로를 전혀 차단 못했다"는 주장?
95% 이상 차단해 일본군이 고립 상태가 된 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한산도 대첩, 명량 해전 같은 전과이며,
그로 인해 일본군은 육지에서 항복 협상으로 전환했습니다.
이순신은 전면 차단은 아니었지만, 실질적 차단에 성공했고
일본군은 항로·지형·기술적 한계로 인해 우회도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이 조선의 승리로 귀결된 겁니다.
이게 질문자님이 말한 "진실"에 가장 가까운 역사적 합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