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시간 날 때마다 쓴 심시 소설 비슷한 것의 초입 부분입니다 혹시 독자의 입장에서 제가 보완해야 할 부분이나 좋게 느끼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답이 무엇이었든 간에 내 마음에는 변화가 없을 것. 지금 정신을 차리지 않고 멍하니 숨만 쉬고 있는 나는 살아있다 할 수 있을까. 그저 죽지 못 해 살아가는 사람. 나를 형용하기에는 너무나도 부합하는 형용어일지도 모르는 구절이다. 눈을 뜨면 어질러진 흰 책상 — 미니멀리즘의 정수라고 해도 좋을듯 한 — 이 보인다. 그 위에는 언제 받았던 것인지도 까먹은 서류들과 이미 내용물은 다 꺼내놓은 박스들이 즐비하여있다. ‘언젠가 치우겠지’라는 생각으로 이미 방치된지 오래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항들이 놓여있고, 그 사이로 곳곳에는 내가 추억할듯한 물건들이 놓여있다. 전애인과 찍었던 이미 빛이 바랠대로 바래버린 먼지가 쌓인 폴라로이드 사진이라던가, 그 이와 같이 쓰려고 남겨놓았던 이미 내 곁을 몇 해 전에 떠나 이젠 연락도 잘 하지 않는 친구가 별 볼품없는 골프대회에서 상품으로 타온 영화관 티켓. 같이 100일 혹은 200일 때에 맞춘 커플링이라던지. 사실 100 일 때에 맞춘 것이 분명하게 기억남에도 굳이 좋았던 일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키기 싫어서 내 놓은 궤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그 사람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기에 그닥 중요한 사실은 아니다. 그 밖에도 내가 고향을 방문했을 때에 부재중이던 자신의 애인을 배반하고 나와 정분이 난 소중한 고향친구가 써준 편지들 또한 나의 양심을 찌르는 존재가 되어 눈에 밟히는 곳에 놓여있다. 그 과오의 파편들을 볼 때마다 내 죄책감들을 자극하지만 굳이 정리하거나 버리지 않는 것은 나의 습관인 정신적 자해의 잔여물일지도 모른다. 그 때마다 느껴지는 배덕감을 즐기는 것인지, 나는 날이 가면 갈 수록 책상을 정리하려는 의지가 박약해져가고 있다. 이런 나의 실수들을 되돌아보며 나 자신을 추궁하는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해져 이제 하루도 거스르는 일이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가 세상이 원하는 인간상에, 세상이 인간답다 치부하는 인간상에 조금이나마 근접한 상태로 사람들을 대하게끔 강요되어질 수 있다면. 백번 천번이라도 나에게 스스로 채찍질을 할 마음이 있기에 나는 이 행동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에게 있어서 이런 방식으로 나를 틀에 끼워 맞추는 행위는 꽤나 유서깊은 전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 일생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내 부모는 나를 그들이 그들의 인생을 써내려갈 팬촉에 잉크를 막 묻혔을 때 즈음에 잉태했다. 그렇다. 21 살에 내 생모는 나를 출산했다. 내가 굳이 21 살의 나이를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그 전에 그 인간들이 무엇을 했든 그것은 모두 그들이 써내려간 그들의 인생이 아닌 그저 아버지의 지붕 아래, 어머니의 치맛폭 옆에서 그들의 부모들이 원했던 대로 부린 응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그들이 고대했을 자유를 그들 스스로 차버리고 다시 그들을 가정이라는 틀 안에 나라는 사슬을 이용해서 속박했다. 태어날 때 부터 꼬인 탯줄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나의 탄생과 나와 나의 어머니와의 불경한 연결점은 나의 부모를 그들의 인생으로부터 나아가지 못 하게 속박하는 족쇄가 되어 그들의 봄날들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 피지 못 한 날개에 대한 그들의 한탄은 나에겐 그 어떤 암기보다 날카로운 조각들이 되어 나의 생애에 큰 고통들을 유발하는 존재들이 된다. 그들은 어찌 보면 대단한 인물들이라 할 수 있는데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 할 그들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지며 나의 망가진 동심을 늦게나마 지켜보려 노력하는 그들의 노고는 어린 철들지 않은 나에게도 체감이 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책임의 무게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했던 나였음에도 나의 인생은 실수 투성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사모하던 이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더이상 옆에 있을 자격도 박탈당한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던 사람도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렸던 순간에 나는 무기력의 정수를 느끼었다. 내가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으로 여기었던 도움이 안 될지라도 피해라도 주지 않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나의 과오들과 그 무엇보다도 큰 모순을 만들어내며 유발했던 심통은 내가 교회를 다니며 느꼈던 교인들과 나 사이에 있다 느꼈던 이질감보다 더 장대한 역설을 내 안에서 창조해 내고 있었다. 결국 미워할 사람이 나인 것을. 나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여기었던 확고한 도덕적 가치관 또한 산산조각이 나, 나를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약점이 되어 마음속 깊이 나의 신경들을 찔러대고 있다. 분명 나는 모르지 않았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어찌보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망각의 달콤함에 속아 저질러 버린 행동들의 말로는, 환멸의 고통이 되었고 이를 감내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 나였다. 무고한 이를 다치게 했다는 죄, 이 죗값은 치루고 치루어도 도통 덜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이가 아프도록 한 것도, 그이를 내가 도울 수 없게 만든 것도 나일 터, 진퇴양난의 시기에서 나는 그저 이 상황을 기피할 수 있는 방법만을 찾고 있는 역겨운 합리화를 할 뿐인 쓰레기였다. 남들 앞에서 이뻐보이려 공들여 빚은 어여쁘던 도자기들은 모두 조각나 날카로운 비수가 되었다.